(야쿠마루 가쿠) 허몽 :: 2010/05/26 01:37

허몽 - 10점
야쿠마루 가쿠 지음, 양수현 옮김/북홀릭(bookholic)

'천사의 나이프' 작가인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입니다.
작년에 작가의 책이 국내에서 소개된 이후로 1년만에 다른 책이 나왔는데요.. 과연 작가의 다른 책은 언제나 나올지.. 개인적으로 이 책으로 완소작가로 찜해놔서 기다림의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질듯합니다.. (^^)

작년에 나왔던 '천사의 나이프'는 소년 범죄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는데요. 이번에는 정신분열증.. 심신상실자와 심신모약자의 범죄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사회파 미스테리라고 하는것이죠.
요즘에는 고딕부터 시작해 이것저것 미스테리 장르가 세분화되어서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초반에 기세등등하게 나왔던 사회파 미스테리의 매력은 빼 놓을 수 없을것입니다.. 저 또한 한 동안 사회파 미스테리에 푹 빠져있던 한 사람인지라 간만에 정통적인 사회파 미스테리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이 나와서 무척 반가웠어요..

이 소설의 내용은 심신상실자(이하 심신모약자는 제외)의 범죄로 인해 한 가정이 파괴됩니다.
4년후 죽은 딸을 잊지못하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던 부부의 앞에 4년 전의 범인이 눈 앞에 나타납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주인공인 미카미는 그를 찾아 다닌다는 것이 이야기의 초입입니다.

'천사의 나이프'때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에도 법으로는 벌할 수 없는 범죄가 일어납니다.
바로 심신상실자의 범죄인데요. 정신분열증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일본의 경우 '형법 제 39조'의 법으로 인해 범죄자를 처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세계 어느나라에나 있는 법인지라 이 법에 대한 모순점을 제기하는 영화들이 꽤 많은데요. 가장 유명하다면 에드워드 노튼이 나오는 '프라이멀 피어'가 있겠죠. 워낙 유명한 영화라 딱히 이야기 할것도 없겠지만. 저는 이 책을 보고 '프라이멀 피어' 보다는 츠즈미 신이치가 나왔던 '39 형법 제 39조'가 생각납니다. 이야기는 거의 '프라이멀 피어'와 비슷하지만 좀 더 드라마를 가미하여 범인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범죄를 파헤져가는 정신담당자와의 줄다리기가 상당히 재미있었던 영화였어요. 일본식 특유의 그런 느낌이 상당히 비슷했기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영화가 생각난듯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꼭 추천하는 영화이니 관심있으시다면 한번 찾아보시길.. (영화 감상은 이쪽으로..)

소설속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전직 소설가이면서 피해자의 가족인 미카미. 그리고 그의 부인이었던 사와코.
4년전 범죄를 저질렀던 후지사키. 그리고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된 유키. 이렇게 4명이 주된 주인공입니다.
그 외 사와코와 재혼한 남편. 미카미의 친구인 정신과의사등이 있지요. 이 책을 엔딩까지 다 읽고나서 놀랐던 점은 생각외로 버리는 인물이 하나도 없었다는겁니다. 주요인물은 둘째치고 거의 조연이라고 생각했던 미카미의 친구는 소설 곳곳에 출몰(?!)해서 이야기를 자연스레 진행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더군요.. 소설의 숨은 검은 손이랄까요..;
이렇게 오밀조밀하게 짜여진 관계도가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한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이 책이 이런 오밀조밀한 관계만으로 시작되고 끝났다면 여타 다른 미스테리와 다를 바가 없겠습니다만. 제가 이 책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생각외로 감정이입이 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소설의 실제적인 주인공인 미카미에게 감정이입이 무척 잘 되더라구요. 소설 클라이막스에 나름의 반전이 있는데 주인공에게 몰입하면서 읽다보니 반전이 나왔을때는 미카미만큼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큰 반전은 아니니 크게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딸을 잃어버리게 된 상황이 닥쳤을때 이도저도 못하고 절망해버렸던 나약한 사람이었고, 아내를 지켜주겠다 약속했지만 약속을 못 지켜 못내 마음속에 그런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찌질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후지사키를 미행하고 그의 모습을 보면서 죽이고 싶을정도로 미워하면서도 차마 죽이지 못하고 우왕자왕하는 모습이 참 소시민다워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와코를 보면서 아파하고 또 후지사키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너무나 나약하지만 그 상황이면 그럴 수 밖에 없겠다.. 라는 생각이 들만큼 미카미란 사람을 잘 그려낸 듯 싶습니다.

짧으면 짧을 수도 있는 300P가 조금 넘어가는 이 소설에서 주요인물들의 세심한 감정표현이 있었기에 끝까지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고. 읽으면서 안타까워하기도하고. 살의를 가지기도하고. 답답해하기도 하면서 읽었습니다.
'천사의 나이프'때도 감정이입하면서 꽤 두꺼운 페이지를 금방 읽었는데요. 이 책 또한 그렇게 훌쩍 읽어버려서 그런지 못내 아쉬운 여운이 많이 남았습니다.
특히나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에필로그에서 미카미가 자신의 새로운 작품의 제목을 정했을때.. 그것이 조금 아쉬웠어요. 저는 당연히 이 소설의 제목을 쓸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해할 수 있는 범위내의 제목이었지만 그래도 대담하게 '허몽'이라 제목짓지 못한 작가의 소심함(?!)에 조금 웃어버렸습니다.. (^^;;)

확실한 엔딩을 기대하신다면 조금 섭섭할만한 심심한 엔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이런 엔딩이라 오히려 더 마음에 듭니다. 씁쓸하기만한 사회파 미스테리의 엔딩을 매번 마주하다보면 가슴 속이 씁쓸하다못해 아려질때도 있는데요. 가끔 이런 푸근한 엔딩도 사람사는 맛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엔딩까지 열심히 달려왔던 등장인물들에 대한 배려이기도하고.. 독자에게 무한한 에필로그를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엔딩이기에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책으로 작가의 작품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천사의 나이프'도 '허몽'도 정말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품도 그렇지만 국내에 나온 두 소설의 표지도 상당히 마음에 들더군요.. 깔끔하면서 나름 세련된 맛이랄까..;
작가 프로필을 보니 국내에 아직 나오지 않은 책도 있는데.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100%입니다.. (ㅜㅜ)

'천사의 나이프'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강력하게 이 책도 꼭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이 작가분의 다른책도 어서 국내에서 보게해달라!! 라고 외치는 겁니다.. (+_+)

*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을 기회를 주신 트위터 모출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평생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_<)

2010/05/26 01:37 2010/05/26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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